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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래 (관광학 박사 / 지역개발 전문가) ©브레이크뉴스 하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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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펴놓고 광주와 전남의 경계를 손가락으로 따라가 봅니다. 1986년 11월 1일, 광주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된 이래, 우리는 4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행정구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살아왔습니다. 행정은 편의상 선을 긋지만, 그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여행자의 발길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무등산의 줄기는 담양으로 이어지고, 영산강의 물길은 광주를 관통해 목포 바다로 흘러갑니다.
최근 다시금 불을 지피고 있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를 지켜보며, 저는 이것이 단순한 행정 체제의 결합을 넘어 우리 지역의 미래 먹거리인 ‘관광 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신호탄임을 직감합니다. 이는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자, 동시에 세계적인 관광 경쟁력을 갖춘 ‘초광역 메가시티’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행정의 칸막이가 가로막은 관광의 가능성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 봅시다. 지금 우리는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그리고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 서 있습니다. 지식기반 산업의 일자리는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고, 지방재정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주와 전남이 각자도생하는 현재의 구조로는 지역의 매력을 온전히 발산하기 어렵습니다.
관광 분야에서도 행정의 비효율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생활권은 광역화되었는데 행정 서비스는 시·도 경계에서 뚝 끊깁니다. 광주의 도심 관광과 전남의 생태 관광을 연계하려 해도, 교통망 계획부터 홍보 마케팅, 예산 집행에 이르기까지 손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초광역 연계와 협력이 부족하다 보니 비수도권 광역시로서 광주의 거점 기능은 약화되었고, 전남의 농촌 지역 인프라는 노후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광주전남특별시’, 관광지도를 다시 그리다
이번 행정통합 논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바로 ‘공간의 재구성’입니다. 광주·전남행정통합 추진과 특별법 토론회 발제문에서 제시된 ‘3대 거점 경제권’ 전략은 관광학적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첫째, 광주 거점 경제권은 ‘도시 관광’의 중추가 될 것입니다. 교육·문화, AI, 모빌리티 산업이 집약된 광주는 MICE(회의·관광·컨벤션·전시) 산업과 스마트 관광의 허브로 기능합니다. KTX 광주송정역을 통해 유입된 관광객은 이곳에서 최첨단 도시 문화를 향유하고, 담양·화순·나주 등 인접 도시로 뻗어 나갑니다.
둘째, 서부 거점 경제권(목포·무안·신안 등)은 ‘글로벌 해양 관광’의 전진기지입니다. 무안국제공항이라는 항공 관문과 다도해의 천혜 자원을 결합하여 신재생에너지와 해양 레저가 공존하는 휴양 벨트를 형성합니다.
셋째, 동부 거점 경제권(여수·순천·광양 등)은 ‘생태와 산업의 융합’을 보여줍니다. 이미 세계적인 정원 도시로 자리 잡은 순천과 여수의 해양 관광, 그리고 우주항공 및 이차전지 산업단지를 연계한 산업 시찰형 관광(Industrial Tourism)은 남도만의 독보적인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은 광주라는 도시 거점과 전남의 농촌·해양 거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광주에서 숙박하고 쇼핑하며, 낮에는 전남의 섬과 숲을 여행하는 체류형 관광 모델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특별법, 규제를 넘어 기회를 만들다
이 모든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현재 논의 중인 ‘(가칭)광주전남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은 단순한 통합 선언문이 아닙니다. 이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파격적으로 이양받아 지역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무기’를 쥐는 과정입니다.
관광 기획자 입장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규제 혁신과 인허가권의 이양입니다. 그동안 환경 규제나 토지 이용 규제에 묶여 지지부진했던 대규모 관광 단지 개발이나 해양 레저 인프라 구축이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통합 지자체가 독자적인 도시계획 권한을 갖고, 관광특구 지정이나 국제 행사 유치, 심지어는 비자 발급과 관련된 특례까지 확보한다면 광주·전남은 싱가포르나 오사카 못지않은 국제 관광 도시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추게 됩니다.
상생의 원칙: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관광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통합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쏠림 현상’입니다. 자칫 광주나 주요 거점 도시로만 인프라와 관광객이 집중되고, 나머지 농어촌 지역은 더욱 소외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존 롤스(John Rawls)가 말한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평등이나 차등 지원은 그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관광 정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통합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재원과 혜택은 인구 소멸 위기가 심각한 농어촌 지역의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청년 로컬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데 우선적으로 투입되어야 합니다.
도시 거점과 농촌을 잇는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확충하여 이동권을 보장하고,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살린 ‘농촌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함으로써 통합의 과실이 지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통합이 지향하는 ‘도농 상생발전공동체’의 모습입니다.
2026년, 새로운 남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2026년 7월 1일, 우리는 광주전남특별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름이 바뀐다고 세상이 저절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릇 안에 무엇을 담느냐입니다.
행정통합은 행정가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어떻게 바뀌고, 우리 지역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광주전남특별시는 ‘통합’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바꾸는 제도”라는 발제문의 문구처럼 말입니다.
경계를 지우면 더 큰 그림이 보입니다. 광주의 혁신성과 전남의 잠재력이 만나 빚어낼 시너지는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이제 행정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전 세계인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남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그 길에 저와 같은 전문가들은 물론, 시·도민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통합된 광주·전남이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중심축이자, 아시아 문화관광의 심장으로 힘차게 고동칠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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